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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고려 왕 계보, 현종 가계도, 고려왕조 계보도

by sk1st 꽃 나무 별 2023. 11. 13.

목차

    고려거란전쟁 고려 왕 계보, 현종 가계도, 고려왕조 계보도

    요즘 제작비를 퍼부은 사극, 사골 최수종 님이 왕이 아닌 강감찬 장군역을 맡아서 출연 중인 고려거란전쟁이 방영 중입니다. 고려 시대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로 가득 찬 시기입니다. 그중에서도 고려거란전쟁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입니다. 특히, 이 전쟁을 통해 강감찬 장군의 업적이 부각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고려 왕 중에서도 특히 드라마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현종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고려 왕 계보, 고려왕조 계보도를 살펴보겠습니다.

    현종의 가계도와 그의 출생 배경

    현종은 고려 태조 왕건의 후손이었습니다.

    태조 왕건(최수종)

    그의 아버지는 태조 왕건의 아들이었으며, 어머니는 태조 왕건의 손녀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당시 고려 왕실에서는 근친혼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현종은 왕후와 삼촌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출신으로, 태조 왕건을 기준으로 볼 때 왕손이었지만 정통성은 다소 약했습니다.

    고려 왕 계보와 현종의 왕위 계승

    고려 전기의 왕 계보를 살펴보면, 목종 다음으로 왕을 이을 수 있는 혈족은 현종이 유일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목종의 전통성은 최고였습니다. 고려왕조 초기는 근친교배가 성행했기 때문에 유전적 질환으로 동성애 왕이 태어난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역사에 기록된 유일무이한 한반도 게이왕 목종은 자식이 없었습니다.

    목종 가계도

    강조의 변을 통해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끌어내려진 후, 현종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고려 시대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으로 평가받습니다.

    고려 현종 가계도: 놀랍게도 8대왕인데, 태조의 손자입니다.

    현종의 가족 관계와 후계자들

    현종은 즉위 후 총 13명의 부인을 두었고, 이들 사이에서 5명의 왕자와 8명의 공주를 두었습니다. 그의 첫 부인 원정왕후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으며, 원성왕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덕종과 정종이 다음 왕이 되었습니다. 현종의 다양한 가족 관계는 고려 시대의 복잡한 왕실 내부 정치를 반영하며, 그의 삶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듭니다.

    고려 현종의 삶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근친혼이 일반적이던 왕실 문화, 복잡한 왕위 계승 과정, 그리고 수많은 부인과 자녀들을 통해 드러나는 당시의 사회 구조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합니다. 고려거란전쟁만큼이나 고려 현종의 이야기는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고려 현종의 드라마틱한 삶과 업적

    1. 현종의 어려운 출생과 초기 생활

    고려 현종의 출생은 왕실의 스캔들로 이루어진 사생아였습니다. 어머니는 현종을 낳다가 사망하셨고, 아버지 역시 해당 스캔들로 유배를 당한 뒤 현종이 5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현종은 고아가 되어 버립니다.

    2. 현종의 왕위 계승 과정과 암살 시도

    목종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후손이 없었고, 왕손의 후손으로는 현종이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김치양과 천추태후는 자신의 자식을 왕으로 올리고자 현종을 암살하려는 여러 시도를 했습니다. 이러한 위협 속에서도 현종은 생존하며 왕위를 이어가게 됩니다.

    고러거란전쟁 헌종(김동준: 정태우 아님)

    3. 강조정변과 거란의 침입

    19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현종은 강조정변을 통해 권력을 확립합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거란의 두 번째 침입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침입에서 강조는 죽음을 맞이하고, 현종은 개경을 포기하고 나주로 피신하게 됩니다. 당시 고려는 지방분권 국가였기 때문에, 현종은 지방 호족들로부터도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4. 강감찬과의 협력

    현종은 강감찬을 정치적 스승으로 삼아 거란의 세 번째 침입을 현명하게 막아냅니다. 강감찬의 지략과 현종의 지도력이 결합되어 고려는 거란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방어합니다.

    8대왕 헌종의 신하 강감찬 장군(최수종: 태조왕건 아님)

    5. 현종의 조기 사망과 업적

    현종은 평소에 건강이 약했으며, 3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왕으로 재위한 기간은 15년이었고, 그는 고려의 전성기를 열었던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6. 현종의 후계자들과 역사적 평가

    현종의 자녀인 덕종, 정종, 문종은 차례로 고려의 왕위를 이어받게 됩니다. 현종은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업적으로 큰 인정을 받으며, 그의 통치 이후 고려는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심지어 조선 초기의 세종대왕도 현종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고려 현종의 삶과 업적은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왕으로서의 성공은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이야기는 역사에 있어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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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왕 계보, 고려왕조 계보도

    고려 왕조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 거의 500년간 한반도를 지배한 왕조입니다. 이 시기는 한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여러 왕들이 등극하면서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고려 왕조의 주요 왕들과 그들의 업적에 대해 고려왕 계보 순서대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왕조 계보

    고려 왕 순서

    고려의 역사는 조선의 역사보다 살짝 짧을 뿐이지만, 왕의 수는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을 합친 왕의 수(27명) 보다 많은 34명이나 됩니다. 그도 그럴게 고려는 무신의 난이 심했고, 무신 정치로 왕이 숱하게 폐위되었고, 고려말기에는 원나라에 의해서도 왕이 수시로 교체됐기 때문에 왕의 수가 많습니다. 심지어 한 해에 왕이 3명이었던 해도 있습니다.

    ​ 1대 태조2대 혜종3대 정종4대 광종5대 경종6대 성종7대 목종8대 현종9대 덕종10대 정종11대 문종12대 순종13대 선종14대 헌종15대 숙종16대 예종17대 인종18대 의종19대 명종20대 신종21대 희종22대 강종23대 고종24대 원종25대 영종25대 충렬왕26대 충선왕27대 충숙왕28대 충혜왕29대 충목왕30대 충정왕31대 공민왕32대 우왕33대 창왕34대 공양왕

    1대 태조 왕건 (918-943)

    고려의 시조인 태조 왕건은 북진정책과 혼인관계를 통해 호족세력을 포섭하며 왕권을 안정시킨 인물입니다. 그의 지도 아래 고려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돋움했습니다.

    2대 혜종 (943-945)

    왕건의 장자인 혜종은 외가의 지지 기반이 약해 항상 왕위를 위협받았으며, 재위 3년 만에 원인 불명의 사망을 맞이합니다.

    3대 정종 (945-949)

    왕건의 아들이자 왕식렴과 박술희를 제거하여 왕위에 오른 정종은 정통성이 약해 서경으로의 천도를 시도했으나 실패합니다. 결국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4대 광종 (949-975)

    태조 왕건의 아들이자 정종의 동생인 광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노비 안검법을 제정하고, 과거 제도를 실시합니다. 숙청을 통해 왕권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 태조부터 광종 가계도

    5대 경종 (975-981)

    4대 광종의 맏아들인 경종은 6년간 재위하며 전시과를 제정하는 등의 활동을 했지만, 그의 생활은 오락과 음탕한 면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6대 성종 (981-997)

    태조 왕건의 손자인 성종은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채택하고,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수용합니다.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 체계의 기틀을 마련한 왕으로 평가됩니다.

    7대 목종 (997-1009)

    5대 경종의 맏아들인 목종은 전시과를 개정하고 학문을 장려하였으나, 대리청정과 섭정을 통해 다른 사람이 정치를 하게 하였습니다.

    고려 목종 가계도

    8대 현종 (1009-1031)

    태조 왕건의 손자인 현종은 거란군의 침략을 불력으로 물리치기 위해 대장경을 제작하였습니다. 강감찬의 귀주대첩, 강조의 난으로 목종을 폐위하고 왕이 됩니다.

    9대 덕종 (1031-1034)

    8대 현종의 맏아들인 덕종은 국자감시를 실시하고 현종 때 시작한 국사편찬사업을 완성합니다.

    10대 정종 (1034-1046)

    8대 현종의 둘째 아들인 정종은 천리장성을 완성하고, 노비종모법과 장자상속법을 제정합니다.

    11대 문종 (1046-1083)

    8대 현종의 셋째 아들인 문종은 고려 시대 중 가장 찬란한 문화 황금기를 이룩한 왕으로 기억됩니다. 그의 통치 아래 고려는 문화와 예술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고려왕 현종, 덕종, 정종, 문종 가계도

    12대 순종 (1083-1083)

    문종의 맏아들인 순종은 재위 기간이 매우 짧아, 겨우 3개월 만에 사망합니다.

    13대 선종 (1083-1094)

    문종의 둘째 아들인 선종은 송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였으며, 그의 통치 아래 고려는 다양한 변화를 겪습니다.

    14대 헌종 (1094-1095)

    13대 선종의 맏아들인 헌종은 즉위 1년 만에 숙부인 숙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15대 숙종 (1095-1105)

    문종의 셋째 아들인 숙종은 주화인 은병을 만들어 통용하게 함으로써 경제적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16대 예종 (1105-1122)

    15대 숙종의 맏아들인 예종은 학문 진흥을 위해 국학에 양현고라는 장학재단을 설립했습니다.

    문종, 순종,선종, 헌종, 숙종 예종 가계도

    17대 인종 (1122-1146)

    16대 예종의 맏아들인 인종은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과 같은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했습니다.

    18대 의종 (1146-1170)

    17대 인종의 맏아들인 의종은 무신정변으로 인해 폐위되었습니다. 이는 고려 정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대 명종 (1170-1197)

    17대 인종의 셋째 아들인 명종은 무신 최충헌에 의해 폐위되었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20대 신종 (1197-1204)

    17대 인종의 다섯째 아들인 신종은 최충헌의 실권을 받아들이며 민란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이는 고려 왕조의 약화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1대 희종 (1204-1211)

    20대 신종의 맏아들인 희종은 최충헌을 죽이려다가 실패하여 폐위됩니다.

    22대 강종 (1211-1213)

    19대 명종의 맏아들인 강종은 1197년 최충헌에 의해 강화도로 쫓겨간 후, 1211년에 최충헌에 의해 왕위에 올랐습니다.

    예종, 인종, 의종, 명종, 신종, 희종, 강종 가계도

    23대 고종 (1213-1259)

    22대 강종의 맏아들인 고종은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로 천도하며 28년간 항쟁을 이어갑니다.

    24대 원종 (1259-1274)

    23대 고종의 맏아들인 원종은 친몽정책과 개경환도를 추진하다가 임연에 의해 폐위되었으나, 4개월 만에 복위합니다. 개경환도 후 삼별초의 항쟁이 일어납니다.

    25대 충렬왕 (1274-1298, 1298-1308)

    24대 원종의 맏아들인 충렬왕은 고려 왕이면서 원나라의 사위로 살아간 왕입니다.

    26대 충선왕 (1298-1298, 1308-1313)

    25대 충렬왕의 아들인 충선왕은 한국사 최초의 혼혈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혁을 시도했으나 원의 간섭과 권문세족의 반발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희종, 강종, 고종, 원종,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가계도

    27대 충숙왕 (1313-1330, 1332-1339)

    26대 충선왕의 둘째 아들인 충숙왕은 심양왕 고(충선왕의 조카)와의 정권다툼에 시달렸습니다.

    28대 충혜왕 (1330-1332, 1339-1344)

    27대 충숙왕의 맏아들인 충혜왕은 방탕한 행동으로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복위되었습니다.

    29대 충목왕 (1344-1348)

    28대 충혜왕의 아들인 충목왕은 8세에 즉위해 12세에 사망했습니다. 어머니인 덕녕공주가 섭정을 맡았습니다.

    30대 충정왕 (1349-1351)

    28대 충혜왕의 서자인 충정왕은 12세에 원나라로부터 왕으로 책봉되었으나 3년 만에 폐위됩니다.

    31대 공민왕 (1351-1374)

    27대 충숙왕의 둘째 아들인 공민왕은 고려 재건을 위해 개혁과 반원정책을 단행했으나, 권문세족의 반발과 자신의 시해로 개혁이 중단됩니다.

    32대 우왕 (1374-1388)

    공민왕이 시해되자 10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 우왕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후 폐위되어 강화도로 추방됩니다.

    33대 창왕 (1388-1389)

    32대 우왕의 아들인 창왕은 9세에 즉위했으나 이성계에 의해 폐위됩니다.

    공민왕, 우왕, 창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가계도

    34대 공양왕 (1389-1392)

    20대 신종의 7대손인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 그의 재위 기간 동안 고려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고려 마지막왕 공양왕 가계도

    이러한 왕들의 통치 기간 동안 고려 왕조는 내부적, 외부적으로 많은 도전과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들의 역사는 한반도의 중세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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