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풍양 조씨 항렬표: 전직공계, 호군공파, 회양공파, 금주공파, 평장사공파, 상장군공파 돌림자
풍양 조씨는 조선 후기에 있었던 세도정치로 유명합니다. 풍양 조 씨는 안동 김 씨가 모든 것을 장악했던 당시, 효명세자의 장인인 조만영과 그 아우인 조인영을 중심으로 세를 일으켰습니다. 조인영은 영의정에 올랐으며 세도 정치의 근간이 되는 외척 자리를 놓고 안동 김 씨와 격돌한 풍양 조 씨는 효명세자가 요절하자 안동 김 씨에게 밀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 헌종, 철종 등이 하나같이 대를 잇지 못하면서 조 대비가 흥선대원군의 아들 익성군을 효명세자의 양자로 삼아 대통을 잇게 합니다. 풍양 조 씨는 흥선대원군, 여흥 민 씨 등과 손잡고 안동 김 씨를 밀어내는 데 마침내 성공합니다.
풍양 조씨(豐壤 趙氏)의 역사
풍양 조씨의 시조인 조맹은 후삼국시대 신라 풍양현에서 태어나 천마산 기슭 바위동굴에서 난세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후고구려 군을 이끌고 후백제와 전쟁 중이던 왕건이 전투에서 패하고 도망쳐 영해 지방에 이르러 한숨 돌리며 군사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때 '바우도사'라는 지혜로운 인물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라는 의견이 나왔고, 왕건은 그를 찾아가 책사로 삼았습니다. 마침내 고려가 건국되자 조맹은 태조 왕건에게 조(趙)라는 성과 맹(孟)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아 삼한개국공신 3등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풍양 조씨는 조맹 이후의 계대가 소실되어 각 계파에서 확인이 가능한 선조를 1세로 모시고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각 계파는 중시조 이전의 계대가 불분명하여 독자적인 항렬표(돌림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풍양 조씨의 분파는 크게 세 개의 계대로 이어져 오는데, 그중 전직공계는 다시 세 개 파로 나뉘어 다섯 개의 분파로 구성됩니다.
조동윤 (趙東潤) 프로필
생애
- 출생: 1871년 (고종 8년)
- 사망: 1923년 (향년 52세)
- 본관: 풍양 조씨 (豐壤)
- 자: 우생(雨生)
- 호: 혜석 (惠石)
- 직업: 군인, 관료, 정치가
- 종교: 유교 (성리학)
- 작위: 조선귀족 남작
주요 활동
- 1894년(갑오경장) 무과에 급제하여 군인으로 활동
- 1907년(융희 4년) 대한제국 육군 참모본부 제2국장
- 1910년(융희 7년) 한일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 참의원
- 1912년(민 1년) 중추원 참의
- 1920년(민 9년) 남작 작위를 받음
사후
- 친일 행위로 인해 2007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됨
전직공계(殿直公系)
고려 중기 천화사전직(天和寺殿直)을 지낸 전직공(殿直公) 조지린(趙之藺)을 1세로 삼고 있습니다. 전직공의 6 세손인 대언공 조염휘의 자손대에 이르러 세 개 파로 나뉩니다.
호군공파(護軍公派)
조지린의 6세손인 조염휘(趙炎暉)의 장남 조사충(趙思忠)을 중시조로 삼습니다.
회양공파(淮陽公派)
조염휘의 3남 조신(趙愼)을 중시조로 삼습니다.
금주공파(錦州公派)
조염휘의 4남 조임(趙𥙛)을 중시조로 삼습니다.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 남원공파
충렬왕 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낸 조신혁(趙臣赫)을 1세로 삼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남원공파라고 불렸는데, 중시조의 증손인 남원도호부사를 지낸 조계팽(趙季砰)의 후손이 현달하여 족보가 조계팽의 후손을 중심으로 편찬되었기 때문입니다.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
고려 중기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조보(趙寶)를 1세로 삼고 있습니다.
남양주시 천마산에는 조맹이 왕건과 만났다는 현성암(見聖庵)이라는 유적이 있으며, 조맹이 홀로 마셨다는 우물인 '독정이'라는 마을 이름도 남아 있습니다. 풍양 조씨는 조선 후기의 세도정치로도 유명합니다. 효명세자의 장인인 조만영과 그 아우인 조인영을 중심으로 세를 이루었으며, 조인영은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세도 정치의 근간이 되는 외척 자리를 두고 안동 김 씨와 경쟁하였으나 효명세자가 요절하면서 안동 김 씨에게 밀렸습니다. 이후 헌종, 철종 등의 대를 이어 흥선대원군과 손잡고 안동 김 씨를 밀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풍양 조씨(豐壤 趙氏) 항렬표
풍양 조씨의 항렬표는 각 계파마다 다릅니다. 다음은 주요 계파별 항렬표입니다.
전직공계(殿直公系) 돌림자
풍양 조씨 세수 | 전직공계 항렬표 |
18세 | ◯년(年) |
19세 | 희(熙)◯ |
20세 | ◯재(載) |
21세 | 돈(敦)◯ |
22세 | ◯묵(默) |
23세 | 병(柄)◯ |
24세 | 동(東)◯ |
25세 | ◯구(九) |
26세 | 남(南)◯ |
27세 | ◯연(衍) |
28세 | 성(誠)◯ |
29세 | ◯희(熙) |
30세 | 용(鏞)◯ |
31세 | ◯신(新) |
32세 | 중(重)◯ |
33세 | ◯규(揆) |
34세 | 용(用)◯ |
35세 | ◯원(元) |
36세 | 상(商)◯ |
37세 | ◯형(衡) |
38세 | 무(茂)◯ |
39세 | ◯범(範) |
40세 | 강(康)◯ |
41세 | ◯재(宰) |
42세 | 종(鍾)◯ |
43세 | ◯주(湊)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돌림자
풍양 조씨 세수 | 평장사공파 항렬표 |
17세 | 만(萬)◯ |
18세 | ◯년(年) |
19세 | 희(熙)◯ |
20세 | ◯재(載) |
21세 | 돈(敦)◯ |
22세 | ◯묵(默) |
23세 | 병(柄)◯ |
24세 | ◯기(紀) |
25세 | 강(康)◯ |
26세 | ◯규(揆) |
27세 | 연(演)◯ |
28세 | ◯행(行) |
29세 | 진(振)◯ |
30세 | ◯동(東) |
31세 | 순(淳)◯ |
32세 | ◯경(卿) |
33세 | 기(祺)◯ |
34세 | ◯성(成) |
35세 | 창(彰)◯ |
36세 | ◯중(重) |
37세 | 연(縯)◯ |
38세 | ◯직(稙) |
39세 | 범(範)◯ |
40세 | ◯용(鏞) |
41세 | 승(承)◯ |
42세 | ◯욱(旭) |
43세 | 영(寧)◯ |
44세 | ◯무(茂) |
45세 | 재(宰)◯ |
46세 | ◯정(程) |
47세 | 태(兌)◯ |
48세 | ◯우(宇) |
49세 | 건(建)◯ |
50세 | ◯보(輔) |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 돌림자
풍양 조씨 세수 | 상장군공파 항렬표 돌림자 |
24세 | 갑(岬)◯ |
25세 | ◯일(日) |
26세 | 병(昺)◯ |
27세 | ◯종(宗) |
28세 | 성(晟)◯ |
29세 | ◯기(玘) |
30세 | 강(慷)◯ |
31세 | ◯상(庠) |
32세 | 성(聖)◯ |
33세 | ◯채(蔡) |
34세 | 진(陳)◯ |
35세 | ◯건(乾) |
36세 | 천(遷)◯ |
37세 | ◯정(正) |
38세 | 무(武)◯ |
39세 | ◯회(回) |
40세 | 용(庸)◯ |
41세 | ◯신(薪) |
42세 | 영(郢)◯ |
43세 | ◯규(葵) |
44세 | ◯무(茂) |
45세 | 재(宰)◯ |
46세 | ◯정(程) |
47세 | 태(兌)◯ |
48세 | ◯우(宇) |
49세 | 건(建)◯ |
50세 | ◯보(輔) |
결론
풍양 조씨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가문으로, 각 분파별로 독자적인 항렬표를 통해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풍양 조 씨의 역사는 조선 후기의 세도정치와 관련이 깊으며, 각 계파의 항렬표는 세대 간의 연결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러한 항렬표를 통해 풍양 조 씨의 역사와 전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식정보 > 어원 어학 유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지간지 순서 12간지 동물순서 (0) | 2024.07.05 |
---|---|
고려왕조 계보, 고려시대 왕 계보 (0) | 2024.07.03 |
청주 한씨 항렬표: 대동항렬, 충성공파, 이양공파, 참판공파, 문양공파, 청주한씨 문정공파 돌림자 (0) | 2024.06.22 |
조선왕조 가계도 (0) | 2024.06.19 |
격식 뜻, 권위, 월권 차이 (0) | 2024.06.17 |
댓글